상식

당신의 현실적인 고통과 문제는 노력만이 해결책인가요?(ft. 왜 당신은 죽어가는 자신을 방치하고 있는가)

지식 전달자 다알 2025. 7. 9. 20:56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사회적 요구에 직면한다.

어린 시절에 교육으로 시작한 후 사회생활(생업)이란 이름으로 이어진다. 그것 개인의 선택인 듯 보여도,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 어떤 종교적 운명론 보다 강력한 힘을 인간에게 휘두르며 통제하는 것이 교육, 경제, 사회 등의 현대 사회 시스템이다. 사회 문화적 흐름의 거대하고 빠른 유속은 개인의 정신적인 세계관을 통제하며, 정신적으로 인간을 제어한다. 평소에는 체계 위력을 쉽게 느낄 수 없으나, 인생의 중대한 선택의 순간 등장해 나를 그 사회적 요구에 욱여넣는다.

 

현대 시민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학교에 가야 하고, 성인은 일을 해야 한다. 이 명제에 반론을 제기하는 것은 굉장히 몰상식하고 부도덕한 일이 된다. 사회 체계는 죽을 때까지 현대  인간을 쫓아다니며 욕구, 희망, 안전을 볼모로 인간에게 권력, 강압, 억압을 요구한다. 개인은 실존적으로 '자살'을 각오하지 않는 한 이 시스템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 시스템에 완벽히 적응해 시스템의 부분이 되어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적응하지 못해 억압되고 바스라져 사라져 가는 사람도 있다. 시스템에 대한 적응은 각각의 개인적 경제력, 신체적 건강, 타고난 능력 등에 따라 이뤄진다. 하지만 그 과정에 공정함이란 없다. 공정함은 언제까지나 수사적인 목표일 뿐, 달성될 수 없는 신기루다. 

 

너무 비관적인 이야기인가? 싶은 생각도 들지만 내가 현대 사회를 살아가며 느낀 감정은 이렇다. 누군가는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열심히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최소한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최선을 다한 그 기억이 있다면 우린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을 수 있고 보람차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한다. 과연 성공하지 못한 과정에 대해 보람 있다고 느낄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내가 읽은 책의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해 본다. 

 

인간의 고통은 적극적인 노력으로 해결된다고?

책의 저자는 인간이 고통을 느끼는 이유가 바라는 욕망과 현실의 간극 때문이라 말한다. 그 사이가 크면 클수록 인간을 불행할 수밖에 없고 고민하고 고통스러워한다. 현대 사회는 경쟁 사회기 때문에 문화적인 요소까지 가해져 고통은 배가된다. 하지만 인간은 고통을 2가지 방향으로 선택할 수 있다. 간극을 줄이기 위한 노력의 고통과 좌절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고통이다. 인간의 삶은 원래 괴롭고 끝까지 스스로 쪽팔리지 않는 당당함을 위해 목표를 위해 고통을 감내하며,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인 문제는 개인의 노력이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쪽팔리지 않기 위해 성장하는 고통을 선택하라는 주장은 언뜻 보기에 현실적이고 생산적인 것 같다. 그러나 막연하다. 스스로 고통을 선택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고통이라면, 그 고통 앞에서 좌절하고 있었을까? 개인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수많은 문제가 있다. 경제적 불평등, 직장 내 괴롭힘, 성폭행, 전세사기, 선천적 장애까지. 이런 문제를 덮어두고 개인의 성장을 향한 고통은 바람직하고 숭고하다고, 스스로 쪽팔리지 않게 고통을 선택을 하라고 말하는 것이 현실성 있는 요구일까? 수많은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이 단지 무기력하고, 공허한 꿈을 지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이런 무책임한 말들은 더 중요한 개인의 문제해결 의지와 방향성을 왜곡시킬 뿐이다. 정확히 상황을 스스로 이해하고 파악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흔히들 삶은 정글이라고 한다. 무작정 열심히 앞만 향해서 달려서는 주변의 날카로운 가시들과 늪지대 속에 빠질 뿐이다. 정확한 나침반과 지도를 구비하고 내가 향해갈 길의 어떤 포인트에서 물을 마실 수 있고 음식을 먹을 수 있는지 알아야 출발할 수 있다. 

 

만약 당신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 앞에서 좌절해 있는 상황이라면, 필요한 것은 기운을 차리기 위한 휴식이며, 주변 사람들의 공감과 이해다. 너무 스스로를 다그치며 노력이라는 앞이 뭉뚱 한 망치로 야채를 썰고, 종이를 오리려 일을 더 걷잡을 수 없이 망치기 전에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와 쉼을 가지라고 말하고 싶다.  

 

내 보충 및 반론들

"스토아 철학가 세네카의 말처럼 현실보다 상상에서 더욱 큰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이다"

-《왜 당신은 죽어가는 자신을 방치하고 있는가》p.66

▶ 당장의 문제가 실제보다 과장될 수 있다는 말이다. 스토아 철학은 삶의 거대한 운명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개인의 이성을 최대한 활용해 현명하게 살아가고자 한다. 스토아 철학자라면 고통 앞에서 무작정 노력하라고 이야기하기보다, 스스로의 욕망과 마음을 먼저 다스리고 정리하는 것을 이야기했을 것이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의 <파노플리 증후군>은 특정 제품을 소비하면서 같은 제품을 소비하는 소비자와 자신을 동일한 집단이라고 생각하는 환상을 말한다.

-《왜 당신은 죽어가는 자신을 방치하고 있는가》p.66

▶ 저자는 현실과 욕망의 간극을 해소하기 위해 진정한 노력을 기울이기보다 명품, 과시용 소비를 통해 그 간격을 편법으로 메우려는 태도를 비판하기 위해 보드리야르를 언급한 것으로 이해된다. 보드리야르의 가장 큰 문제의식은 가상이 실제를 대체하는 것을 넘어서 가상(이미지)이 현실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파노플리 증후군은 상징체계가 현실이며, 이미지라는 현실에 갇힌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왜곡된 인식을 말한 것이다. 단순이 사치품을 구매하며 그 대상과 자신을 일치시키는 환상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실제의 자리를 대체품이 완벽히 차지하며 생기는 왜곡이 문제다. 파노플리 증후군은 사회 문화적 현상으로 개인의 왜곡된 현실 인식을 바로잡는 것으로 문제 해결이 되지 않는다. 가상(이미지)이 실제(현실)를 대체한 현대 사회이기 때문에 먼저 이미지를 극복하는 현실을 명확히 인식하고 바로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참고도서』

《왜 당신은 죽어가는 자신을 방치하고 있는가》, 고윤(페이서스코리아) 지음, Deep&Wide, 2024년 초판